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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학교 투쟁은 진짜 통일운동”

손미희대표 6.15뉴욕위 온라인 초청강연
글쓴이 : 로창현 날짜 : 2021-09-12 (일) 22:18:56

손미희대표 6.15뉴욕위 온라인 초청강연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일본인 소학교 교사가 ‘통일운동에 남과 북만 있냐? 분단으로 인해 오늘까지 재일조선인들이 투쟁하는데 남과 북만 통일운동을 하는양 궁금했다는 말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손미희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가 지난 2일 6.15공동선언실천뉴욕위원회(대표위원장 김수복) 초청으로 온라인 공개 강연을 펼쳤다.

 

6.15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와 대변인을 역임한 손미희 대표는 일본 정부로부터 탄압과 차별을 받는 재일 조선학교 ‘우리 학교’의 의로운 투쟁을 알리며 후원(後援)한 주인공이다.

 

손미희 대표가 우리학교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와 70년 넘는 핍박과 투쟁사, 학교와 아이들을 지키고 함께 연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역설하자 온라인 청중들은 충격과 분노, 슬픔과 감동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우리학교를 소개한 동영상에서 한 여학생이 “저는 조선민족으로 태어났지만 우리학교가 없었다면 일본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가 있었기에 당당하게 조선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고 말하는 모습에 대견해했고, 우리학교를 졸업한 동포대학생들이 빗속에서 집회할 때 붙잡고 함께 울었던 일화를 전할 땐 청중들의 눈가에도 도리없이 눈시울이 맺혔다.

2014년 일본에서 열린 포럼에서 한 일본인 소학교 교사가 차별받는 우리학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털어놓은 손 대표는 “일본 정부는 고교무상화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은 물론,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도 우리동포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만을 쏙 뽑아서 정부 예산지원을 삭제했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손미희 대표는 강연을 맺으며 “한가지만 호소하겠다 강연을 통해 우리 학교에 대해 이제 아셨다면 이들에게 응원과 연대를 해달라. 함께 손잡는게 필요하다. 힘들게 살아온 동포들에게 손을 잡고 응원해 달라. 제가 우리학교의 현실을 알고 불편함을 느낀 것처럼 불편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 아이들 눈동자를 잘 기억하셔서 통일을 만들어야 한다. 통일만이 남의 땅에서 사는 이들의 서러움을 씻는 길이다”라고 당부해 박수를 받았다.

 

김수복 위원장은 “일본정부의 재일조선인 차별정책은 과거사가 아니고 도를 더하며 혐한 운동으로 발전하는 듯하다. 이번 강연은 악조건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우리 어린 고사리들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수복 위원장은 “재일동포의 간고한 역사는 민족 통일운동과 별개가 아니고 그 자체다. 우리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차별을 맞받아치며 정면돌파하는 재일동포들과의 연대(連帶)의 의미가 크다. 그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80분 넘는 강연 내내 격정의 목소리로 열변을 토한 손미희 대표의 강연을 지상중계(紙上中繼) 한다.

 

 

△ 4.24한신투쟁, 민족교육투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해방 무렵 일본엔 200만명의 동포들이 살았다. 이중 140만명이 돌아가고 60만명이 남았다. 동포들은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어강습소를 차렸고 학교를 만들었다. 60만 숫자는 뭘 의미하나. <60만번의 트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오사카조선고교의 사례는 60만 동포가 치고 올라간다는 상징이요, 우리 동포들의 삶이다. 1948년 4월부터 이 학교를 없애려고 미군정과 일본이 획책하자 전국 각지에서 투쟁을 했다. 야마구치현에선 동포들이 싸움을 정말 잘했다. 효고현에서는 우리 동포들이 71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똘똘 뭉쳐서 효고현 지사를 만나서 담판 짓고 학교폐쇄 않고, 책임도 안묻겠다고 합의서 썼지만 바로 엎어버리고 계속 탄압했다. 4월 23일과 26일부터 오사카의 우리 동포들이 구청을 찾아가 매일 집회하고 데모하고 감옥에도 하고 다치기도 했다. 10여일 전후 격렬한 싸움을 한게 바로 4.24한신투쟁, 민족교육투쟁이다. 우리 동포들은 아직 60~70년 지났지만 4.24민족 투쟁은 오늘도 계속된다고 한다. 이 투쟁 와중에 박기봉 선생이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거의 죽게 되어 석방 몇시간만에 사망했고 열여섯살 학생 김재이(?) 소년이 총에 맞아 죽었다. 민족학교를 지키겠다는 투쟁에 합류한 사람들이 100만명이 넘었다..이건 뭘 의미하나? 연로자 다 합쳐도 우리 동포가 60만이다. 결국 나머지는 함께 싸우는 일본사람이다. 연대투쟁 함께 한 이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된다.”

 

 

△ ‘남쪽은 고향, 북쪽은 조국’이라는 사람들

 

“이분들은 남쪽을 고향이라고 하고 조국을 북이라 한다. 이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부르는건 애초 하나의 나라(조선)일 때 식민지에서 끌려갔기 때문이다. 1946년에 조선학교를 만들었다. 근데 남과 북에서 정권이 수립됐다. 그러나 이들은 두나라로 갈리기전에 끌려갔고 여전히 우리는 하나의 조선이라고 생각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냐? 실제로는 국적이 아니다..남으로 갈수도 북으로 갈수도 없다. '우리는 조선이 하나의 나라일 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된 조국, 통일이 아마도 본인들이 정체성을 찾기위한 가장 절실한 것이다. 해방후 200만명중 140만명이 귀국할 때 대부분 북쪽이 고향인 사람들이 돌아갔다. 남쪽은 이승만정권 때문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분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고향이 북쪽인 사람 거의 없다. 70~80%가 남쪽이다. 대부분 제주도와 경상도 전라도 바다를 낀 사람들이 많다. 바다를 통해 끌려갔기 때문이다. 강제징용되기 쉬운 지리다. 이런 사람들이 일본에 남아서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학교를 지키는데 지금 남아있는 학교가 64교, 초중고급 합쳐서 135개 학교를 지키고 있다. 얼마나 힘들었겠냐. 때로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1957년부터 시작돼 올해까지 계속됐다. 북이 정말 어려운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한번도 끊이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어려운시기에 고향땅에선 우리를 모른척 하는데 북에선 한해도 잊지 않고 교육원조비도 보내고 맛있는 과일, 감도 밤도 보냈다. 그때마다 동포들은 냄새를 맡으며 이게 고향 냄새구나..남쪽에선 아는 척도 안하고 북에선 수십년을 하는데 대체 우리에게 고향이 무엇이며 조국이 무엇이냐. 김일성주석이 그런 말 했다고 한다 “(일본)동포들이 어렵게 남아서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가 학교하나 공장하나 덜 짓더라도 그 마음을 함께 해야 한다”고..그래서 우리 동포들은 “남쪽은 우리가 태어난 생물학적 고향이지만 북쪽은 나를 할아버지부터 지탱해준 조국이다”라고 말한다. 이 동포들이 오늘도 70여년이상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싸우고 있다 그래서 이들과 어떻게 함께 가야할 것인가 고민이기도 하다.”

 


이하 사진 '우리학교를 지키는 시민모임' 페이스북

 

△ 조선학교의 싸움은 일본을 위한 일이다

 

“제가 조선학교 알고는 있었지만 함께 통일운동 하면서 우리가 뭘 할수 있을지 고민하지 못했다. 워낙 다이나믹 코리아 아닌가. 통일운동은 분단된 땅에서 늘 탄압받고, 빨갱이 소리 들으며 6.15이전까지 환영받지 못했다..일본에 있는 동포들 함께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고민하기도 했고 살짝 모른척 하기도 했다. 2014년 1월에 일본에서 역사NGO프로그램이 있었다.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 맡고 있어서 포럼에 참석했다. 당시 한 일본분이 30~40분에 걸쳐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조선학교가 고교무상화에서 제외된 얘기다. ‘이런 일을 하면 조선동포들이 나한테 자꾸 고맙다 하는데 제발 그런 말 하지마라. 난 조선인들 위해서 하는게 아니다. 내가 소학교 선생님인데 학교 교사로서 아이들 가르치는 양심으로 일본의 미래가 걱정된다. 일본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죄하지 않고 이렇게 조선학교를 탄압하면 일본의 아이들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겠냐. 일본의 미래가 없다. 일본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거다. 난 늘 미안하다. 싸워주고 우리를 조금이라도 반성하게 해주는 재일조선인들 너무 고맙다.’ 조선학교 얘기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불편했다. 많은 NGO들 앞에서 연설하는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저녁 먹는데 그 일본분이 내 앞에 통역하고 앉더라. 제게 이렇게 물었다. ‘딱 한가지 질문하겠다. 한국에서 통일운동한다는데 뭘 얘기하는거냐. 통일운동에 남과 북만 있냐? 분단으로 인해 오늘까지 투쟁하는데 왜 남과 북만 통일운동인지 궁금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다이나믹코리아 뭐고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 ‘고맙습니다 더 좀 고민하고 찾아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고 매일 통일운동을 고민했다. 학생운동 청년운동 여성운동 통일운동 한다는 자락에 있었는데 진짜 통일운동을 빼놓은게 아닌가? 누가 할것인가? 여기 오신 많은 분들 통일운동, 민족, 자주 왜 얘기하는가? 가야할 길이 뭔지 알지만 불편함을 떨치기 위해서 하는거다..하루하루 동포들과 함께 하는 운동, 통일운동의 중요한 하나가 동포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탄압을 가장 견딜수 있는 조직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폭넓게 만들기위해 종교단체까지 찾아갔다 제일 먼저 앞장세운 종교인들은 가장 표시나는분들, 불교 스님들이다. 머리카락 없고 도포자락 휘날리고^^ 당시 신부님들은 제주 강정투쟁 앞장 섰을때다 목사님들 여성들도 앞자리에 세웠다.”

 

 

△ 분단의 역사에서 가슴 아프지 않은 날이 어디 있으랴

 

“2014년은 세월호 아이들 수장되던 해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곤두박질쳤다. 큰 아픔이었다. 일본땅에서 탄압받고 있다는 얘기 할수 없더라. 인터넷상에 재일동포들의 요구를 올렸다. 아주 간단하다. ‘우리를 차별말라!’ 2014년 6월 13일 부족하지만 작은 조직이라도 만들자 해서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사람들’ 종교계 여성계 소박하게 발족했다. 어떤 이들이 6월 13일은 미선이 효순이 미군탱크에 깔려죽은 너무 가슴아픈 날이다. 처참한 날이다. 이렇게 가슴아픈날 발족을 해야 하냐. 그러자 다른 분이 그랬다. 분단의 역사에서 어느 한날이라도 가슴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 이 아픈 하루하루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통일을 만들지 않을수 없다. 각계각층이 모여 상근자 없이 연대해서 욕심부리지 말고 딱 두가지만 하자고 했다. 한가지는 저같이 불편한 사람들 많이 만들자는거다. 서명을 받든, 성명을 발표하든, 글을 쓰든, 알리자, 또하나는 (재일동포들에게) 가보자. 박근혜정부시절 국가보안법 남북교류협력법도 있고 일본동포들 만나는게 국가보안법 위반이고 교류협력법 위반이라고 하더라. 그럼 위반하자. 실천불교승가회 스님들께 그랬다. 탄압받을 수 있다. 제일 먼저 감옥 가셔야한다. 제가 영치금 넣겠다 농담도 하고 그랬다. 스님들도 ‘그래 가겠다 면회와라’ 나이든 여성이 감옥에 가면 시작할땐 아주 결연했다. 여기서 투쟁 시작했다. 일본 방문시 통일부 신고 안했다. 내부에 토론 굉장히 많았다. 그게 첫 번째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왜 실정법위반이냐 신고 안하는게 악법과 싸우는거다. 결연한 의지로 갔다와서 구속이 되도 좋다고 했다. 근데 아무 말도 없더라. 결국 박근혜가 감옥가지 않았냐 문대통령이 와서 조금 편해졌지만 지금도 똑같다.”

 

 

△ 빗속에서 아이들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일본정부에 왜 차별하냐 그러면 차별한적 없다 정식학교 아니니까 그런다. 교육자 양심으로 이렇게 해도 되냐? 7년간 똑같은 대답만 똑같이 하는게 일본인 관리다. 바깥에 나와 아이들 만나서 격려와 응원의 이야기하는 ‘금요행동’은 2010년부터 했다. 일본 고교 무상화는 외국계학교 43개 중 조선학교 10개만 제외했다. 33개만 무상화 이유가 뭐냐? 일본과 조선과의 관계다. 정치적 이유로 탄압했다. 너무 억울했다. 우리가 세금도 내는데 우리 아이들의 교육권을 묶어 놓냐..양심적인 일본분들이 고교무상화를 위한 전국연락회 만들어 같이 싸웠다. 고교 2년때부터 싸운 아이들이 2년간 싸워도 달라진게 없다. 조선대학에 진학하고도 달라진게 없다. 이 아이들이 재판이 시작되면 도쿄 오사카 나고야 히로시마 재판소 가까운 학교에서 달려왔다. 오사카에서 한번 이겼지만 모든 재판 다 졌다. 오사카 항소심도 지고 대법에서도 졌다. 재판 한 당사자 아이들은 여전히 후배들이 탄압받고 있다며 함께 싸웠다, 항의운동을 했다. 조선대학이 서쪽에 멀리 있다. 금요일에 점심 급하게 먹고 전철타고 4시부터 1시간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메가폰 들고 교육받을 기회를 달라 1시간동안 외치고 또다시 버스 전철 타고 갔다. 그 현장에 우리가 갔다. 빗속에서 비 맞으며 집회하는데 10여명 종교인등 20여명 함께 갔다. 집회 현장에서 아이들 외치는거 들으니 눈물이 쏟아졌다. 남의나라 남의땅에서 길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 비와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목이 메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얘들아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분단된 땅을 물려준것도 미안한데 오늘도 남의 땅에서 너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도록 한게 미안하다, 그러나 외롭지 않을거야. 우리도 돌아가서 매주 금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외치며 싸울거다. 우리는 이 싸움을 멈출수 없다. 이 싸움은 이길 수밖에 없다..’

‘조선학교를 다닐수 있어 행복했어요. 학교를 만들어준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하고 우리를 응원하러 고향땅에서 오셨으니 우린 부러울게 없어요. 함께 하겠습니다..’

아이들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빗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약속을 2014년 10월부터 우리학교와 함께 하는 금요행동 만들어 함께 하고 있다. 7년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7년동안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달라진게 없다. 오늘 한국은 금요일이다 333차 행동 시작이다. 일본대사관 앞뿐 아니라 농민들이 제주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금요일마다 한다. 여성농민들이 밭에서 논에서 인증샷 다 받아서 올리고 1년쯤 하다보니 바빠서 못올리면 일본에서 연락이 온다. ‘손대표님 오늘 금요행동 없었습니까?’ 중요한 연대투쟁 잊고 있었구나 깜짝 놀라서 퍼다 나른다. 이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은 물론, 독일 금요모임 있을 때 뉴욕 LA에서 보내오신다..동포들이 메시지 보내온다. 전 세계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걸 동포들이 안다.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외치는 사진 인증샷 한 장이지만 우리 동포들에겐 큰 힘이기 때문에 갔다온 사람들 다 느낀다.”

 

△ 유치원무상화도 제외된 동포들

 

“일본에서 4월에 개학하면 조선학교에서 호위무사 만든다. 인간터널 만들어 그 사이로 아이들 가게 한다. 조선학교 아이들 학교 갈 때 (극우들이) 쫒아와서 죽어라 나가라 온갖 쌍욕 한다. 무서움과 공포 질리는 아이들 너무 가슴 아프다. 그렇지만 훌륭하고 장하다. 그런 속에서 학교를 간 아이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조선민족이라고 멸시하고 차별하는게 아니라 호위무사 인간터널 만들어 응원하는걸 보고 ‘내가 조선학교 잘 다니는구나’ 자부심 갖는다. 고교무상화 제외될때 의기소침 했다. 일본정부는 악독하게도 차별을 멈추지 않는다. 대학 검정고시 시험보는데 학생 통학해도 할인도 안해주고 북일관계 안좋을때마다 치마저고리 칼질을 하고 유리창 깨고 붉은 페인트 칠한다. 확성기로 떠들어대면 우리 학교 선배들이 후배들한테 달려가 귀를 손으로 가려준다. 품에 안고 노래를 불러준다. 방문해서 이런 소릴 들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갔다올때마다 미칠 것 같다..여학생 가방이 참 무겁다. 남학생 흰와이셔츠 바지입는데 여학생은 치마저고리가 교복이다. 치마저고리에 칼질하고 머리 잡아당기고 밀치고 해꼬지 많으니까 학교에서 치마저고리 못입게 했다. 구겨질까봐 가방에 넣고 학교에 들어와서 갈아입는다. 집에 갈 때 갈아입고 자기 교복을 못입고 다닌다. 이름표도 한글인데 해꼬지 할까봐 감춘다. 일본에서 2019년 9월부터 소비세 8%, 10% 올렸다. 올린만큼 유치원지원 유보무상화(유치원무상화)를 했다. 유치원무상화도 조선학교 제외했다. 우리 동포들은 세 살 아이부터 차별받는다. 우리 유치원이 40여개다. 외국계 유치원도 40개다. 조선유치원 덴마크 필리핀 베를린 유치원이 연합해서 항의하는데 소극적으로 하더라. 이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외국계 유치원들 합류하니까 일본이 얼마나 간교하게 하는지 ‘유치원무상화는 지자체가 알아서 해라’ 한거다..단결투쟁하는데 지자체별로 하라 그러니까 5개 정도 어디는 해주고 어디는 안해준다. 분열을 시키는거다. 우리 동포들이 이래선 안된다 우리는 40개가 함께 한다. 고교무상화는 모든 재판을 실질적으로 졌기 때문에 이부분 어떻게 살려서 다시 투쟁할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유보무상화가 가장 취약한게 뭐냐면 유치원, 유아원도 가야 우리 말 하고 소학교 가는데 실제 금액이 너무 비싸서 못가니 일본학교 가게 되고 조선학교 줄어들 수밖에 없다. 너무나 어려움 겪는다. 자기 아이 조선학교 보내러 공사판에서 일하고 월급받아서 보내기도 한다. 퇴직한 선생들이 다시 와서 무급으로 일한다. 학교 존폐가 걸려 있다 고교무상화 유보무상화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1948년 한신대 투쟁, 한신민족대 투쟁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 통일만이 남의땅에 사는 서러움을 씻는 길이다

 

?6.15이후 희망과 절망 왔다갔다 하실텐데 4.27 판문점선언 할때는 정말 희망 가졌다. 이젠 뭔가 되겠구나. 2018년에 희망이 넘쳤다. 그때 우리가 제안한게 <꽃송이> 사업이다. 아이들 말은 되는데 글이 안된다. 백일장 해서 입선을 하면 평양 여행을 보내고.. 40여년간 1년에 천편이 모인다고 한다 눈물없인 못본다 우리에게 만약 돈이 생긴다면 학교에 다준다..어떤 어머니 늘 일을 하고 동전 계속 모아서 학교에 가져온다. 학교를 지키는 투쟁 함께 울고 웃고.. 이 고운 글들 동포들만 보기 아깝다. 남쪽에 소개하면 좋겠다.. 동포들 투쟁 잘 나타내고 책으로 만들자..돌아와서 바로 시작된게 꽃송이다. QR코드 찍으면 영상도 보이고 꽃송이가 한국사회 소개되니 재일동포사회 너무나 고무되고 난리가 났다. 내 손주 글이 실려 있다, 옆집 누구 애가 실려 있다, 이걸 할머니 영전에 바치고 싶다... 78년 글을 실은 한 학생을 40년이 지나 2020년 3월에 인터뷰 했다. 지금 교사다. 17살에 글이 실렸던 선생님 인터뷰 동영상 QR코드가 들어있다. 이 책은 단 한권의 책이 아니라 동포들 수십년의 삶이 녹아있다. 코로나 극심해지자 자료 주고받아서 만들자 해서 일본 못가고 만들었다 <우리는 통일로 달려갑니다> 꽃송이 갈때마다 들고간다. 제가 책장사처럼 하고 있지만 이 책을 알리는게 우리 동포와 조선학교를 알리는거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호소하겠다 이제 아셨다면 이들에게 응원과 연대가 필요하다 함께 손잡는게 필요하다. 힘들게 살아온 동포들 손을 잡고 박수를 하는게 필요하다. 일본영사관 앞에서 집회 하는게 너무나 고맙다. 불편한 사람들 많이 생겨서 실천하는 사람들 많이 생기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아이들 눈동자를 잘 기억하셔서 통일을 만들어야 한다. 통일만이 남의 땅에서 서러움을 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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