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중경기' 10일께 결정된듯
평양=로창현기자|Newsroh newsroh@gmail.com
지난 15일 월드컵 예선 사상 처음 벌어진 '무관중 경기'를 놓고 무수한 억측(臆測)과 낭설(浪說)이 일고 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는 한국언론으로는 유일하게 로창현 대표기자가 평양에서 '무관중 경기'의 배경과 현지 분위기를 상세히 취재했다. <편집자 주>
‘사상 첫 무관중경기는 남북관계를 고려한 북측의 배려다.’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H조 예선 남과 북의 경기는 ‘무관중 경기’라는 전례없이 놀라운 조건에서 치러졌다.
무관중경기는 종종 프로리그에서 홈팀에 대한 징계 차원에서 내려지곤 한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홈팀이 자발적으로 무관중 경기를 택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북은 지난 2005년 평양서 열린 이란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심판(시리아)의 퇴장 판정에 흥분한 관중들이 병 등을 투척하는 바람에 이후 일본전에서 FIFA로부터 무관중 징계를 받은 적이 있지만 홈경기 개최를 포기해 제3국(태국)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번 경기에서 북측은 남측 응원단과 취재진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고, 생중계를 위한 국제 신호 제공도 하지 않았다. 이같은 비협조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최근 남북관계 경색(哽塞)에 따른 불쾌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지 분위기 등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을 들여다볼 때 불만보다는 남북관계 훼손을 막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측은 올들어 남측이 미군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지속하고 F-35 스텔스기 등 천문학적인 규모의 군사무기를 수입하는 것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해왔다. 지난해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군사적 적대행위 금지 등 5개항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며 정부간 대화는 물론, 일체의 민간교류까지 올스톱한 상황이다.
응원단과 취재진 입국 불허와 생중계 하지 않는 것이 남측에 대한 불만의 표시가 아니냐는 분석도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현지에서 파악한 바로는 북측은 최근까지도 경기를 정상적으로 개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월드컵을 위한 뉴스로(NEWSROH) 취재의 진행과정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기자가 취재 신청을 한 것은 지난 8월이었고, 3주전인 9월 중순엔 사전 답사차 평양에 들어가 입장권 예약까지 끝냈다.
일주일전만 해도 이상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경기 닷새전인 10일께 ‘취재가 어려울 것 같다’는 긴급 메시지가 전해졌다. 정확한 사정을 알기 위해 현지에 도착해 확인한 결과,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며, 이같은 사실도 사전에 전혀 공표하지 않는다는 내막을 파악하게 되었다. ‘무관중 결정’에 따라 몇명의 자국언론을 제외한 모든 취재진의 입장도 불허되고, 심지어 북측 축구협회 임원들도 극소수만 입장이 허용됐다.
도대체 왜 북은 홈팀의 엄청난 잇점인 일방적인 응원과 중계권료, 광고료를 모두 포기했을까. 일각에서는 경기에 질 경우, 후유증을 견디기 어렵고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장면을 수만명의 관중이 보는 것이 부담스럽기때문이라고 추론한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인 단견이다. 이미 2017년 여자축구 대표팀이 평양에서 경기 할 때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가 많은 북녘 관중앞에서 진행됐다는 점을 봐도 설득력이 없다.
진짜 문제는 경기 과열로 엄청난 '후폭풍'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99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와 달리 이번 경기는 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싸우는 공식 대결이다. 어느 한쪽도 양보 할 수 없는 승부라는 점에서 경기가 과열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양 팀은 무관중 경기를 했음에도 각각 2명씩 경고를 받았고 북측의 경우, 유럽서 활약하는 떠오르는 스타 한광성(유벤투스)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입추의 여지없이 만석을 이룬 가운데 경기가 열렸다면 선수들이 더욱 흥분하여 상황에 따라 관중들까지 격분할 수도 있다. 1969년 멕시코월드컵 중미예선에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축구경기때문에 전쟁까지 한 사례를 돌이켜보면 결코 간단히 치부할 상황은 아니다.
만일 과거처럼 관중석에서 병 등이 투척되는 최악의 상황이 재현됐더라면, FIFA의 징계는 물론이고 여론의 악화로 남북관계 자체가 파탄이 날 위험성도 있다. 경기 후 ‘북한 선수들이 너무 거칠었다’는 선수들의 소감이 전해지면서 포탈 사이트 등에서는 거부감을 적대적으로 표현하는 네티즌들의 많은 댓글이 달린 것만 봐도 그렇다.
국내 취재진과 응원단, 생중계를 허용하지 않은 것도 관중간 충돌 우려, 자극적인 남측언론의 보도, 경기과열에 따른 남측 시청자들의 분노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도의 정책적 결정이라는 얘기다. 월드컵과 축구 대표팀은 남이나 북이나 모두가 열광하는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이지만 향후 북미협상과 남북간 교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는 상황에서 이번 경기로 인해 상호 적대감이 증폭된다면 분단고착화와 대립을 원하는 세력을 제외한 모두에게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 불보듯 훤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북측이 월드컵 경기의 승리만 노렸다면 4만235석의 김일성경기장 대신,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능라도의 5.1경기장을 선택해 어마어마한 응원으로 남한 선수들의 얼을 쏙 빼놓았을 것이다. 경기후 북측이 전달한 녹화 비디오에 따르면 이번 경기에서 예상과 달리 남한 팀을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이 관중 입장을 허용했더라면 3점의 승점과 함께 막대한 중계권료, 광고비를 챙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두를 포기한 것이다. 행여 경기과열로 남북관계가 최악에 처하지 않도록 고도의 정책적 결정을 내렸다는 결론이 합리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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